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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같이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


백성을 먼저 생각한 임금 세종이다.


왕이 된 세종대왕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왕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바로 세종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했던 세종대왕은 아버지가 건설한 재단에 신하들과 힘을 합쳐 백성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젊은 학자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집현전을 두고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켰다.




훈민정음, 올바른 가르침 소리


세종은 백성들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또 국민에게 잘 소통하고 국민이 지켜야 할 원칙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443년에 젊은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를 만들었다.


많은 관리들과 귀족들은 한자가 아닌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상민과 여자들만이 한글을 조금씩 사용했지만, 배우기가 쉽고 읽고 쓰기가 편리해 점차 널리 쓰였다.


나는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기생 3세의 아들 장영실은 경상도에서 노비로 살았다. 


그러나 그 지역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했다.


물건을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그는 가뭄과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물을 만드는 데 나무를 사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은 장씨를 궁으로 불러 일을 시켰다. 


이후 장씨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자동으로 종이나 북을 울리는 물시계(자격루)와 해시계(앙부일구), 강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를 만들었다.


이때 우량계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측량하여 비를 측정하였다.


빗속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를 측정해 그 양을 기록해 국민들이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고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길은 농사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각 지방의 기후와 토지 조건에 맞는 농사법을 담은 <농업 직설>이라는 책을 펴냈다.




왕과 백성을 모신 재상, 황희와 맹사성


세종 옆에는 두 명의 위대한 재상이 있었다. 황희와 맹사성.


황희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관료였다. 


세종은 황희와 크고 작은 일들을 의논했다. 


황희를 도와 나라를 이끌었던 맹사성은 비오는 날이면 집 안에서 삿갓을 써야 할 정도로 검소하게 사는 신하였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 그 틈을 메워 위의 왕과 아래의 백성을 섬겼다.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땅을 확장한 장수 최윤덕과 김종서 두 사람.


세종 때 이종무는 일본의 쓰시마 섬을 격파하고 일본 열도를 격파하여 한반도 남부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은 항상 북쪽의 국경을 지키고 땅을 넓히려고 애쓰던 또 다른 골칫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여진은 국경을 넘어 식량을 빼앗았고, 그들은 계속 백성들을 괴롭혔다.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를 시켜 백두산과 두만강 일대에 있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4개, 6개 팀을 편성해 군생활을 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살도록 했다. 


이로써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영토가 넓어졌고, 경계는 오늘날과 같은 경계가 되었다.




단어공부


1) 재상 - 2품이상의 벼승을 말하는 것으로 임금을 도와 모든 관리들을 지휘한다.


2) 정벌 - 적을 공격해서 피해를 준다.



누가 한글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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