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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초상 (Situation Ⅳ) - 장 폴 사르트르 본문

NACHO LIBRE

시대의 초상 (Situation Ⅳ) - 장 폴 사르트르

NO WAVE 2009.11.02 17:28


시대의 초상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장 폴 사르트르 (생각의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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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 상황 시리즈 Portraits : Situation

우선 이 책의 원본은 사르트르가 <현대>지를 창간하고 그 글들을 모은 상황 시리즈( 10권까지 발간) Situation Ⅳ이다. 우리나라에는 상황 Ⅱ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상황 Ⅴ가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로 번역되었다.

 

초상(Portraits)의 부제처럼 나탈리 사토르, 라이보비치, 앙드레고르가 한 챕터로,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폴 니장, 메를로 퐁티가 다시 한 챕터로, 틴토레토, 자코메티, 라푸자드, 앙드레 마송, 볼스가 마지막을 구성한다. 첫번째 챕터는 세 명의 문학가들의 책에 대한 서평이고, 두번째 챕터는 실존주의 문학과 철학의 동료들에 대해서, 세번째 챕터는 예술에 대한 서문으로 추측된다.

 

부정적인 사르트르의 애석함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역시 두 번째 챕터이다. 문학가로써 존경했던 앙드레 지드에 대한 서평은 당연하니 넘어가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알베르 카뮈에 대한 <카뮈에게 보내는 답장> <카뮈를 애도함>이 수록되었다. 먼저 <카뮈에게 보내는 답장> <현대>지에 장송이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비난조의 서평을 실음으로써 논란의 시작에 대한 사르트르의 답장이다. 카뮈는 이에 대해 반론으로 <현대>지와 함께 사르트르를 공격하는 글을 싣는다. 사르트르의 이 길고 긴 글은 카뮈의 지식으로써의 태도와 실망에 대한 특유의 거침없는 공격적인 글이다. 이후 실존주의의 축을 이루었던 둘은 영원히 결별을 한다. <카뮈를 애도함>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카뮈를 애도하는 글로서 사르트르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는 그들의 우정을 기르며 애도를 표한다.

** 사르트르와 카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사르트르를 옹호하는 입장이기에 사르트르 vs. 카뮈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두번째 챕터가 역시 흥미를 끄는 건 절친한 동료들에 대한 사르트르의 애석함이 글에 묻어나끼 때문일 것이다. 카뮈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절친했지만 폴 니장의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젊은 사르트르의 부정적 태도와 회의감을 아쉬워한다. 이후 니장을 통해 사르트르는 사회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니장의 <아덴 아라비아>의 재조명에 대해 사르트르는 열정적인 서문을 실어줌으로써 책의 성공과 니장의 재발견을 해준다. 역시 메를로 퐁티에 대한 글은 사르트르의 후회와 아쉬움이 글에 묻어나 있다. 메를로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 카뮈, 니장, 메를로 퐁티가 한 챕터를 이룬다.


이렇듯 젊은 사르트르는 부정성의 아나키스트적 태도를 보였다. 거침없이 글을 쓰고 사유하는 그는 자신들의 동료들 마저 부정성으로 일관함으로써 커다란 상처를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사르트르가 왜 실존주의 철학자와 문학가로써 최고에 이르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부정성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절친했던 동료들의 글에서 보여주는 일관적인 글들과 차후에 희망을 보여주는 글에서 인간적인 사르트르를 만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기계였다. 이는 자서전적 소설 <>에 스스로 인정했다. 문학에서부터 철학적인 글 그리고 사회적인 글쓰기까지 그는 어마한 글들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사르트르의 글들이 매력적인 부분은 아나키스트적인 정치적 태도와 문학가적인 문체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권위에 대한 탈피, 부정성의 글을 쓴 일괄적인 태도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미건조함이 아닌 부드러움과 강함을 지닌 문학가로써의 문체가 그렇다.

 

아날로공 : 상상이론에서 유사 재현 물, 유사 물을 의미하며 이미지는 의식으로 정의하고 물질은 아날로공으로 정의한다. 예술작품의 물질성으로써 예술가가 머릿속에 있는 어떤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실재적인 수단을 사용할 때 어떤 물체(물질)로 표현할 때 이를 아날로공이라한다.

사르트르의 작품해석과 비평에서 작가에 초점을 맞추지만 작가와 작품도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건 아날로공 때문이다. 작가와 예술가는 머릿속의 상상계(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재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표현하는 게 작품이다. 아날로공은 온갖 표현 수단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기 때문에 작가도 작품도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성이 드러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사르트르의 비평이 상황 시리즈의 주를 이루지만 작가는 결국 아날로공에 의해 작품 바깥에 위치하고 작품은 도외시된다. 이는 사르트르의 글들의 또 다른 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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