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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변명 - 장 폴 사르트르 본문

NACHO LIBRE

지식인을 위한 변명 - 장 폴 사르트르

NO WAVE 2009.11.08 15:15


지식인을 위한 변명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장 폴 사르트르 (이학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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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에 대한 사르트르의 일본 강연회

1965년 9월과 10월 도쿄와 교토에 있었던 지식인에 대한 세 차례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 같은 맥락으로 실존주의 철학을 확립한 <존재와 무>의 반휴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대중에게 쉽게 강연한 1946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역할과 동일한 맥락의 책이다. 특히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를 연계시킨 <변증법적 이성 비판> 부분에서 지식인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사르트르의 지식론의 기초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식인은 소위 부티부르주아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중간 계급의 위치시킨다. 근대의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지배층인 부르주아 계급의 논리를 대변하여 이론을 전개 시킨걸 부각시킨다. 유럽의 보편주의는 모순과 소외 현상을 발생시키고 지식인은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했다. 지식인이 학문을 추구함에 있어서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실제적 삶은 보편성을 거르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거짓된 보편성을 폭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식인은 노동자계급을 대변하고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투쟁해야하고 노동자계급 출신의 지식인 배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앙가주망 실천으로써의 지식인

사르트르는 실천을 지식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학문을 탐구하는 지식인이 보편성의 모순에 접했을 때 이를 부정하고 실천할 때 지식인이 된다는 것이다. 보편성의 부정성은 사르트르의 반휴머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반휴머니즘 : 휴머니즘의 일반적인 개념은 인간다움을 일컬으며 인간주의, 인문주의, 인본주의하고 통한다. 그렇지만 부르주아 휴머니즘(자유주의 휴머니즘)은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를 대변하는 휴머니즘이다. 즉,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휴머니즘이고, 서양의 식민주의의 합리성을 대변하는 휴머니즘이며 백인 남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휴머니즘이다. 보편성을 가장한 모순적인 휴머니즘 거짓된 보편성의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는 보편성의 모순을 부정하는 반휴머니즘을 내세웠다.

예를 들자면, 지식인은 보편적인 개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를 가르치고 학문적 연구를 한다. 만약, 권력자난 지배계층에 의해 민주주의의 참여가 부정되거나 인권 침해가 실제로 발생한다면 지식인은 이를 부정하고 모순을 지적해야 한다. 만약 지식인이 침묵한다면 그는 지식인으로써 모순에 다다를 것이다. 어떠한 사이비 지식인은 이를 권력층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자신의 학문을 이용한다. 이렇듯 사르트르의 실천은 앙가제 함으로서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고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에 도달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막스 베버의 강연회를 엮은 책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베버는 지식 추구의 학문의 보편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어 사르트르와는 상반된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사이비 지식인에 사르트르의 정의이다.

사이비 지식인은 진정한 지식인처럼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다, 하지만. 또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라고 즐겨 말합니다. 이런 논법은 진정한 지식인을 혼란에 빠뜨리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양비론을 일삼는 지식인의 태도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전개하는 지식인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이성인, 보편적 지식인처럼 행세하면서 논리를 호도하고 선동하는 지식인과 지배 계급층이 얼마나 많던가. 논점을 흐리는 듯한 태도는 진실을 왜곡시키고 최종에 이르러서는 모순된 보편성을 공고히 시키고 냉소주의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다.

 

사르트르가 2차 세계 대전 중 포로수용소 생활 이후 아나키즘적 태도를 버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적 실존주의로 변절했다는 평가에 대해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사르트르이기 때문에 참여를 강조하고 제 3세계와 사회주의를 위했다고 본다. 참된 지식인으로써의 사르트르의 지식인에 대한 변명이 이 강연회에서 잘 나타난다. 3장의 작가는 지식인인가의 주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연장으로서 작가도 마찬가지로 지식인이라고 선언한다.

작가는 다른 지식인처럼 우연히 지식인이 된 게 아닙니다. 그는 본래부터 지식인인 것입니다. 작품 그 자체가 작가로 하여금 작품을 벗어나서 이미 다른 지식인이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실천-이론적 차원 위로 옮겨 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작품은 우리를 짓누르는 세계 내에서 존재를-비-지식의 차원 위에서-복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품은 절대적인 가치로서의 삶을 체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자 다른 모든 자유에 호소하는 그 어떤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지식인의 죽음

최근 국내에서도 지식인 논쟁이 한창이고 있다. 2007년 출간된 <지식인의 죽음>이 그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 교수들의 정치참여인 폴리페서의 논란도 있다. 단 분명히 말하지만 지식인은 보편성을 가장한 지배계급의 논리를 대변하는 특정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명적인 예가 MB정부의 국무총리 지명자인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이다. 지식인으로써 그는 많은 발언을 해왔지만 실제는 모순의 극치였다. 상층부에 버금가는 비리에 지식인의 죽음을 보았다. 보편성의 모순을 지적 해야 할 지식인이 지배층의 거짓된 보편성의 휴머니즘을 대변하는 자로 전면에 나서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식인에 대한 변명을 통해 지식인을 정의하고 역할을 제시했던 사르트르. 이 책을 경향신문사의 <지식인의 죽음>과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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