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AVE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본문

NACHO LIBRE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NO WAVE 2011.12.15 15:42

열정은어떻게노동이되는가한국사회를움직이는새로운명령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한윤형 (웅진지식하우스, 2011년)
상세보기

 경제 발전을 빠르게 이뤄낸 기적 같은 국가.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일컫는 수식어이다. 현대사의 고난을 거치며 빈곤해 있던 시대에서 개발도상국을 선도하는 국가에서 이제 선진국의 문 앞에 서있다. 이러한 과정이 너무나 빨랐었을지도 모른다. 선진국에서는 자본주의의 생산소비라는 괴물을 낳고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생산을 전가할 시점에서 68혁명 일어났다. 청년들과 노동자들 소비에서 잃어버린 주체를 찾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고 혁명을 일으켰다. 68혁명 이 후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 전까지 노동은 자본주의를 위한 노예의 산물이 아닌, 자유를 찾기 위한 삶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었다. 삶의 가치를 위한 복지의 증가는 이를 증명해준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발전은 국가주의의 감옥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경제 발전은 일부 지도자들과 재벌들의 성과였고 모든 수혜는 이들에게 돌아갔다. 노동자는 노력에 강요 당하며 고통에 매몰됐다. 그리고 장시간의 노동과 국가와 기업에 대한 희생을 통해 쾌속 질주하며 잘살 것 같았던 모든 이의 꿈들은 1997년 금융위기인 IMF로 산산 조각 나버렸다. 모든 이들이 누려야만 했던 당연한 권리인 주체의 자유는 이렇게 사라졌고 새로운 자유가 대체를 했다. 시장이 모든걸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더 빠르게 노동의 페달을 가속시켜왔다. 경제 발전의 노력에 의한 희생의 보상은 없었다. 대신에 이제 노동은 열정을 수반해야만 했다. 이 책은 제목처럼 IMF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에 열정이 어떻게 노동이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롤프 옌센는 <드림소사이어티>에서 일과 생활이 합쳐지는 노동의 변화되는 사회를 제시한다. 68혁명 이후 노동과 생활이 분리되었던 유럽식의 사회가 일과 재미를 합치시키는 미국식 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이에 따라 일과 여가 시간, 일과 가족, 일과 가치관, 일과 유희가 동일화된다. 옌센의 드림소사이어티의 기본은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일과 개인을 합일시키기 위한 융화제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모든 책임은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열정 부족에 있다.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88만원 세대 20대의 취업 문제 또한 개인의 열정이 부족한 것이 되는 것이다.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취업자들이 눈 높이가 너무 높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발언들의 근거는 어디서 오는가? 바로 열정이라는 관념을 개인의 노동 가치관에 부여하며 책임을 돌리는데 있다. 소위 스펙은 학력, 취업, 승진을 위한 모든 판단 기준의 기초이다. 가장 기본적인 스펙이 없으면 열정이 부족한 낙오자가 된다. 그래서 늪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우리들은 스펙을 위한 자기 계발을 위해 몸 부림 친다. 열정을 판단하는 기준의 스펙은 경쟁이라는 스펙타클 소용돌이로 몰아 넣는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개인은 국가의 국민이다. , 국민인 된 개인의 가장 기본권인 생존권은 국가 및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은 경쟁의 인식 속에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개인의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는 국가의 역할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열정 노동에 대해서 언급해보자. 열정 노동의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영화, 공연, 연예, 스포츠 등 예술 분야이다. 책에서 대표적인 예를 제시하는 IMF 이후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e스포츠이다.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e스포츠는 새롭게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양산했다. 10대부터 시작하는 프로게이머들은 10년 넘게 많은 주목을 끌면서 이 분야를 이끌어 왔다. 그리고 방송과 자본이 결합하면서 프로스포츠화 됐다. 팀 체제이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철저히 1 1 대결 구도이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들은 정해진 숙소에서 24시간 내내 PC 앞에서 연습을 한다. 이들은 열정을 쏟아내어야만 주목 받을 수 있다. 프로팀에 소속된 인기 게이머가 억대 연봉을 받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작은 연봉을 받는다. 반면에 프로게이머를 지향하는 연습생들은 수입이 없다. 이들은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10대부터 학업까지 포기하면서 연습에 매달린다. 대기업 자본과의 결합으로 e스포츠는 새로운 영역으로 넓혀졌지만 이는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망루와 같다. 만약 한쪽 영역이 붕괴하면 연쇄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프로게이머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오로지 열정만으로 개인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한다. 10년이 지난 e스포츠에서 주목을 받은 선수는 소수이고 다수의 게이머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

IMF 체제 이후 우리 사회를 20 80의 사회라고 명한다. 올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Occupy Wall street(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는 1%를 위해 99%가 점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이는 금융분야에 한정하더라도 20 80의 사회는 점점 벌어져 10 90의 사회로 직면하고 있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은 전 분야에서 이루어지지만 특히 열정 노동에서 두드러진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 공연, 연예, 스포츠 분야는 실물의 교환 보다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 영역이다. 마샬 맥루언은 이를 미디어라고 명명했다. 미디어는 이미지라는 메시지가 자본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영역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영화의 경우 영화의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서 배우 캐스팅에 중점을 두고 홍보를 한다. 배우와 감독 그리고 시나리오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표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배우들의 캐스팅 비용을 따지면 인기 주연 배우들의 비중이 높다. 공연, 연예, 스포츠 분야에서 소수의 개런티와 연봉이 수직 상승하는 이유이다. 대중 문화가 폭발하던 1960년대와 비교하면 이러한 비율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20 80의 사회에서 10 90의 사회로 가는 것과 동일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영역에서 다수가 소수로 이향되는 것을 부추기는 요소는 바로 열정이다. 그러나 관련 종사자가 소수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작은 바늘 구멍을 뚫어야 한다. 이미 소수 권력이 공고화되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그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분야를 지탱한다. 점점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규모가 커지지만 영화 스태프, 공연 스태프, 연예 종사자, 스포츠 선수들,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들이 불안정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고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평등의 정의를 위한 복지 체제

90 10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를 위해 복지가 필요하다. 단순히 복지를 경제 관점으로 바라볼 때 포퓰리즘 논쟁에 휩싸일 수 있다. 복지는 평등을 위한 정의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평등은 각자가 지닌 자원이나 기본적 가치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게 아니라, 높이 평가할 근거를 갖고 있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실제로 향유하는 자유에 의해서 좌우된다. 발전 능력을 향유하는 평등이 자유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개인이 열정을 쏟아 부을 때 개인은 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으로 인해서 재분배의 원칙, 평등이 간과 될 때 개인은 다수의 소외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열정이 노동을 통해서 진정한 개인의 자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복지 담론은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호주에 있을 때 그들이 열정 노동을 어떻게 문화를 향유하고 유지하는지를 관찰한적이 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소위 영미와 유럽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이미지의 전달을 위해 소수의 20%가 수입과 개런티의 80% 독점하고 있다고 미디어 담론에서 언급했다. 이는 문화 구조가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숫자로만 따진다면 10~20%의 메인스트림이 존재하고, 언더그라운드가 80~90%가 존재한다. 물론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의 완충지대인 중간영역도 존재하다. 이러한 구분을 계급론과 일치시킬 수도 있다. 열정 노동의 문제처럼 우리나라는 언더그라운드 계층의 수입과 고용이 불안하여 많은 생활고를 겪는다. 반면에 호주는 언더그라운드 계층은 자유롭게 열정을 쏟아 부으며 창작 활동을 한다. 이를 단순하게 호주는 잘사는 나라니까 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호주는 1인당 GDP 자체가 한국보다 2배는 높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에 위치한 이들이 충분히 자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복지에 있다. 직업으로 열정 노동을 택해도 복지 후생뿐만 아니라 정부의 각종 문화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 지원의 혜택을 받는다. 이러한 재분배를 통한 발전 능력의 평등은 자유로운 노동 활동을 보장한다. 호주뿐만 아니라 영미와 유럽 선진국들의 각종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이유이다. 자본 위주의 인프라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창작 활동을 위한 복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모든걸 자본주의 관점인 경쟁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승리자가 된 소수가 모든걸 독점하고, 다수는 서로 끊임없는 경쟁을 하며 작은 바늘을 뚫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이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패배자로 낙인 찍히고 낙오자가 된다.


다수의 패배자가 행복한 개인이 되기 위해서

현대 사회는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노동 관념은 사라지고 있다. 이미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이라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점점 노동자들은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노동을 단순화 시키며 창의적인 인재상을 요구한다. 기업이 만들어 놓은 열정의 스펙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창의적인 인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소수의 승리자가 만들어 놓은 룰에서 다수의 패배자가 되어버린다. 패배자에게는 개인의 행복은 부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적인 부는 증가해도 불행하다. 전 세대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이다. 비약적인 경제 발전 시기의 힘들고 고난 했던 노동은 IMF 이후 또 다시 노동의 불안정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제시한다. 다수가 패배자가 될 것인가, 모든 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저작자 표시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