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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네이션-스테이트의 충돌, 크림반도 합병과 동아시아

NO WAVE 2014.04.08 18:24

네이션-스테이트의 충돌, 크림반도 합병과 동아시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21세기 신냉전이라고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시민 혁명 후에 푸틴의 러시아가 곧바로 강력히 개입하면서 혁명의 과실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가 했다. 한편 혁명으로 결성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으로 인해 오히려 단합의 효과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혁명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군부나 제3의 세력이 권위 정부를 수립하지만, 혁명세력은 러시아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야기에 혁명의 유지는 단단해졌다.

그리고 크림반도의 주민투표 결과는 21세기의 커다란 변곡점이 될 것 같다. 신냉전이 아니라 네이션(Nation)과 연합국가(State)의 상징적인 대결이다. 


네이션이 내포하고 있는 민족국가.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의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소비에트는 사회적인 국가 연합국가(State)였다. 소비에트 붕괴 후 러시아는 민족국가를 표방한다. 강력한 러시아 민족을 지향하는 푸틴은 네이션, 민족 보호를 앞세워 크림반도를 흡수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다른 구 소련 연방 국가들처럼 유럽연합(EU)와 나토 체제에 편입하려고 끊임없이 시민 투쟁을 벌여왔다. 비록 과거의 오렌지 혁명의 결과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시민 혁명으로 이를 관철해냈다. 유럽연합은 하나의 유럽 아래 여러 국가가 함께하는 스테이트 연합국가를 표방한다. 이번 사태는 네이션과 스테이트의 결합과 분리의 변증화를 거치며 대립하는 대리 모델인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미국은 발언 수위를 높였으나 G2인 중국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중화민족 국가인 네이션을 표방하는 중국이지만 실제 국가 구성은 다수의 자치 민족 체제인 스테이트 국가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중국 내 민족 자치 독립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는 효과 때문에 침묵 중이다. 유럽 내에서도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까탈루냐, 바스크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터키의 쿠르드족이 유럽연합의 스테이트 체제에서 네이션으로 민족 독립 투쟁 중이다. 20세기가 네이션에서 상호 이질적인 것들이 국가라는 동질화에 의해 스테이트로 전환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스테이트와 네이션이 자본주의의 이익이 혼재하여 더욱 혼란스런 양상의 세기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자본주의=네이션=스테이트의 국가 자본주의 체제는 민족과 사회국가라는 경계를 허물며 불분명한 좌표로 옮겨 가는 중이다.


우선 네이션(Nation)과 스테이트(State)의 포함된 개념을 정의해보자. 특히 네이션은 '민족'이 원천적으로 포함되느냐 안 되냐는 논쟁이 많다. 네이션을 국민국가의 국민주권으로 해석해야 옳기도 하다. 그러나 근대의 국민국가 생성 자체가 민족과 언어에 기반을 둬 태동하고 이를 국민에게 주워진 사회 계약이 주권이 됐다. 네이션이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기반이라면 주권을 주는 사회 계약은 스테이트로 바라 봐야 한다. 그리고 근대 서양의 국가들이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과정을 거쳤다면 제 3세계 국가들은 서구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민족주의 기반의 독립 투쟁을 거쳤기에 고스란히 네이션 국가에 귀결했다. 미국 대통령인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소비에트의 스탈린의 제3인터네셔널의 민족 독립은 식민지의 고통을 받는 민족들에게 독립 국가를 고취시켰다. 네이션의 국민국가에서 민족이 응시됨은 네이션-스테이트가 서구에 의해 식민지에 인위적으로 그어진 상상의 공동체이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와 유럽의 중앙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근대의 크림전쟁에서부터 연방체제에서 우크라이나로 편입과 현재의 러시아로의 합병은 한국에게도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중국, 한국, 북한, 일본이 동아시아 연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걸음마도 못 떼고 있음이 현실이다. 유럽 연합처럼 경제 통합 위에서 네이션-스테이트로 가야 하지만 여전히 네이션에 머물러 있다. 일본과 한중 관계에서 침략 역사에 반성 없음의 갈등과 한반도의 남북 분단으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의 대리전이 커다란 부침이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내륙으로 진출하려 한다. 그 기반은 서양을 쫓는 근대 국민국가 네이션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본은 일왕의 입헌군주제 유지로 사회적 관계에 의한 스테이트가 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여전히 상상의 공동체인 천왕 국가가 유효하다는 일본의 믿음은 주변 국가들과 갈등을 빚는 원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로 통합된 형식상 네이션-스테이트 체제이지만 중화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 집권 통치 네이션 국가이다. 소수 민족의 억압과 티베트 분리독립 억제의 움직임은 20세기에 머물러있는 스테이트의 본보기이다. 한편으로 국제 사회에 고립된 북한을 지원을 바탕으을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은 네이션-스테이트의 상상으로 태평양에서 미국과 대립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렇게 주변국의 현실적인 갈등과 상상적인 체계의 실타래의 중심에는 남북 분단이 있다. 따지고 본다면 두 체제 모두 네이션을 표방한다. 그것도 서로 마주하고 있기 위한 극단 네이션 체제이다. 1945년 광복 후에 서로의 체제를 유 지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에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이러한 상호 체제의 유지는 외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의지하거나(한국), 외세를 비판하고 비난하는(북한) 양쪽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적을 만드는 분단체제였다. 나름의 통일을 위한 노력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방법론은 네이션에 의해 좌절됐다. 남쪽의 통일을 추진한 민주주의 세력마저도 민족주의 시각에 머물러 있었고 북쪽은 일당 독재체제였기에 네이션에서 스테이트로 가기에는 내부의 반대와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너무도 달랐다. 우선 양쪽 체제를 인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통일론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대두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한국과 공산주의 체제의 북한이 각자 연방 정부를 유지한 후에 차례대로 통일하는 방안이다. 이는 서로 다른 네이션 국가가 스테이트 연합국가로 이행하는 방식이다. 


한반도에서 네이션-스테이트의 성립은 동북아시아에서 많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각 국가의 상상적인 일방의 흐름을 극복하고 유럽연합처럼 연합체로 갈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합국가의 통일 방법론은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갈등유발로 단순히 체제 유지와 정치적 악용을 위한 세력들은 이를 고려연방제로 깎아내리며 안보의 위기라며 용납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의 색깔론이 난무했고 네이션-스테이트의 통일국가는 뜻을 이루기 요원해졌다. 여전히 민족주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통일 구성원과 민족주의로 치장하여 국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공존이 통일의 지향에 한계가 있다. 비록 정치적 효과를 위한 남북 간의 최초 공동 성명이었지만 1972년 박정희 전대통령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 제정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다. 7.4 남북 성명에서는 남북이 적국에서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이후 남북 협력의 지표가 됐다. 스테이트로의 첫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남과 북은 서로 적국으로 간주하며 네이션 체제에 머문다.


동아시아 평화와 갈등 해결의 주된 과제는 20세기 초의 전근대적인 네이션에 머물러 있는 각 국가의 좌표를 옮기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향은 한 지점에서 네이션의 지각을 깨뜨림이다. 그 중 네이션의 갈등에 머물러 있는 한반도의 통일이 가장 큰 파급력을 일으켜 이 지역 정세 변화의 시초가 된다. 두 네이션의 하나의 스테이트는 중국의 스테이트의 정체성을 깨울 것이고 스스로 극단적인 네이션의 상상에 빠져있는 일본을 역사의 책무의 한 가운데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상상적 관계는 현실로 끌어 나와 동아시아 연합의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갈 것이다. 유럽 연합이 탄생한 과정은 독일의 통일로 부터 시작됐고 각 구성원의 네이션-스테이트로의 실천에서 비롯됐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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