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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자의 악몽

NO WAVE 2014.10.20 14:06

타락자의 악몽


그는 땀에 흠뻑 젖었다. 악몽은 그를 끊임 없이 타락시키고 있었다.


대리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 모든 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로 뿌듯했다. '권력과 명예는 바로 이런 맛이지. 수행원이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고급 차에서 내린 그는 이내 명령조로 말했다. "다들 준비 잘되고 있나?" 건물 관리자가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만반의 준비가 한창입니다." "자 그럼 들어 가 볼까." 뒷짐을 지며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걸었다. 느리게 걷는 발걸음마다 어떤 권위가 흐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내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그는 항상 이런 것을 당당함이라 여겼고,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엘리베이터를 점검할 차례다. 그가 여기에 온 이유는 내일 있을 권력자의 방문을 사전 점검하는 것이었다. 권력자의 대리인. 대리인은 권력의 위임을 받아 동일한 힘의 지휘를 지닌다. 그가 행동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세상은 권력에 타락하더라도 거기에 발을 담고 있다면 모든 행위는 정당화된다. 어느덧 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했다. 건물 관리자는 무전기를 들고 분주하게 가장 꼭대기 층인 18층과 연락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는 어떤 입구에 다다를 때 좋아하는 자세로 서 있다. 고개를 30도 이상 들어 시선을 아래로 고정한다. 주머니는 뒷짐을 지다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리를 벌리고 선다. 시선을 통해서 높은 자의 명예를 취하는 기술이자 방식이다.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속삭이듯 관리자에게 말했다. "뭐 아직 준비가 안된 건가? 어디 한번 기다려 볼까?"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더욱 높게 고정한다. 시간은 권력 대리인의 편이다. 공간 역시 권력 대리인의 편이다. 그는 멈춰있고 모두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마도 내일 권력자가 도착할 때는 시간은 더욱 정지해 있을 것이고, 공간은 확장될 것이다. 그는 이를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의 금기가 깨지고 있는 것을. 


파괴자

점심시간이 끝났다. 동료들과 맛있게 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커피를 마셨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오랜만의 낮의 햇볕이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활기가 넘쳤다. 오후는 어떠한 일이라도 전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의 로비가 분주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건물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은 유독 혼란스러웠다. 입주 회사들의 사람들 사이로 관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건물은 공공기관과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각종 행사가 많다. 정부 측 인사도 많이 오고 경제계 거물들도 자주 방문한다. 그래서 요란할 때가 많다. 오늘도 그런 하루 중의 하나겠지. 이렇게 점심을 함께한 동료에게 얘기하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입구 두 곳이 막혀 있었다. 가뜩이나 붐비는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 입구 두군데나 막혀 있다니. 이전에도 주요 손님들이 많이 왔다만 이렇게 입구를 아예 막은 적은 없었다. 총 6개의 엘리베이터 중 건물 후면 방향의 엘리베이터 2개를 통제하고 있었다. 관리인들은 무전기를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서두르는 행동과 긴장하는 얼굴에서 긴박함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상단의 안내 표지는 "VIP 운전"으로 바뀌어있었다. VIP 운전이라는 것도 있었구나. 그는 다른 4개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을 관리자가 움직이는 방향을 주시했다. 이내 어떤 나이 든 사람이 등장을 봤다. 등장한 그의 표정은 준엄하다 못해 시공을 초월하는 거드름이 느껴졌다. 바로 저 사람 때문이구나. 낯이 익긴 했다. 정치인인 거 같기도 하고, 누구더라. 그가 걸을 때마다 시간이 정지하는 것만 같았고, 관리자들의 발걸음은 더 빨랐다. 공간이 어떤 고밀도의 물체 때문에 일그러지는 광경처럼 보였다.


타락자

그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오자 대리인은 재빠르게 그를 안내했다. 건물 관리자들에게 엄청난 위세를 부리던 대리인은 180도로 위상이 변한 것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대리인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관리자들은 무전기를 들고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대리인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내일 누구누구 참석하시는지 잘 알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를 조아렸다. 권력은 수직으로 흐른다. 엘리베이터는 13층 수직에서부터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일반인들은 생소한 듯 이 광경을 바라봤다. 사실 나로서도 관심은 없었지만, 엘리베이터 2호기가 운행 중지하는 것은 불편했다. 아마도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연히 그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냥 뻣뻣하게 서서 반대쪽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동료들과 기다리는 중이었다. 관리자와 대리인이 비켜서라고 나에게 위협 조로 말했다. '응 뭐지? 뭐 어쩌라고' 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 그 자리에 머물렀다. 동료들은 깜짝 놀라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다. "비키시라고요." 다시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기다리시는 것 안 보이나요?" 권력자가 위세 돋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무시하고 다른 곳을 바라봤다.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 그 곳은 권력으로 올라갔다 떨어지기 쉬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2013년 12월 26일 ~ 2014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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