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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역사 교육의 허구성

NO WAVE 2016.12.23 17:29

역사 교육의 허구성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역사 인식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이 문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어떤 인식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는 달라진다. 특히 지형학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이 얽혀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더욱 그렇다.


라캉이 근대철학의 가장 유명한 전제인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틀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 로 생각하는 시점에서만 존재하는 부분의 역설로 의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렇듯이 어떤 명제는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고, 지정된 조건에만 성립한다.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에게 미래는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이다. 과연 자기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란 없는 것일까라는 문제제기를 해보자. 과거가 없음은 역사도 부재이다. 이러한 부재의 자리에 또 다른 과거가 채워진다면 어떠한가. 나는 이 '또 다른 과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코기토와 역사의 전제는 

라캉의 주체의 경우 나 → 생각 = 존재, 

역사의 경우 민족 → 역사 = 미래

가 성립한다.


만약 주어가 '나'가 아니고 3인칭이라면 민족이 아니고 다른 존재라면 '생각=존재’, '역사=미래'는 성립하는지 고찰해야 한다. 이처럼 '민족=역사'라는 주어와 조건절은 한정된 조건에만 만족한다. 생각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민족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역사는 무엇인가. 근대 국가는 민족국가에서 성립됐다. '역사=국가'로 국가에 소속하지 않거나 국가에 소외된 이들의 역사는 조명받지 못할 것이다.


신채호의 문장은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발언했다. 조선의 독립은 조선 민족의 자주적 독립을 외친 민족주의 사상이다. 그러나 신채호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민족 개념의 한계를 깨닫고 군국주의에 저항하는 아나키스트가 됐다. 근대 국가이념에 매몰된 조선 독립의 한계를 뛰어넘는 보편주의적인 사상은 새로운 독립국이 또다른 일본군국주의의 확장판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핍박 받는 전세계 인민의 해방을 위함이었다. 민족만이 국가 공동체를 이룬다는 배타성은 국가주의자의 논리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는 왜곡될 수 있다. 현재 한중일 정부는 역사교과서를 자기중심으로 서술하는 강력한 의지를 내세우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역사가가 서술하는 역사교과서는 검정 제도를 따른다. 그러나 동북아 3국은 단일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려는 공통점이 있다. 문명의 광기라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룬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역사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려 했다. 자기중심의 역사로 인한 국가이성의 과잉을 전쟁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민족 중심의 배타적 국가이념을 지양하자는 합의를 끌어냈다. 보편적인 유럽의 가치 아래, 보편적인 유럽과 세계의 연관성을 기술하는 역사교과서를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전체주의와 배타주의에 대한 반성과 세계의 보편성에 도달하자는 비판적 역사 인식이 관철된 것이다.


꼭 국가주의자가 전체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주의자는 권력독점을 위해 여론을 통제하려 한다.  나치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언어의 조작은 의미까지 조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배제가 성립한다. 이 배제의 작동원리는 국가공동체의 포함에서 예외라는 구분에서 시작한다.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외의 존재를 배제함은 권력의 공고화에 있다. 내부의 비판을 잠재우고 여론을 지배하기 위해 국가 중심의 역사주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그리고 외부 국가와의 갈등은 이런 내부의 모순으로 덮인다. 한국, 일본,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부는 그래서 서로 닮았다. 서로의 행위를 비난하지만, 내부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말의 침묵을 강요하고  감시와 탄압을 가한다. 동일하게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내부구성원에 의한 갈등은 서로를 증오하는 전쟁의 위험까지 직면한다. 그래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서로의 이익을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마치 20세기 초 유럽의 상황과 유사하다. 보편적 세계사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지 않음은 모든 시간의 부재이다. 거기에는 실효적 이익만 있을 뿐 사유는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이들을 위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수는 배제와 포함으로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서 스스로 존재할 공간은 박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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