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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폭력과 엔트로피

NO WAVE 2016.12.23 17:35

폭력과 엔트로피

폭력은 직접적 폭력과 간접적 폭력으로 나눌 수 있다. 폭력은 또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한다. 이러한 모든 총제의 폭력은 잠재와 전이로 전파 된다. 그런 한편 합법과 불법 폭력의 구분도 애매하다. 국가의 치안은 합법적 폭력이다. 그러나 법적인 지위를 넘으면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이 된다. 이에 저항하는 수단 또한 폭력이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폭력의 낙인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여기서 열역학법칙을 폭력에 적용하면 어떨까? 열적평형 상태처럼 평상시의 상황을 평형상태라고 부르자. 폭력의 증가는 평형상태를 깨트린다. 다만 폭력의 총량은 언제나 같다. 그래서 폭력의 합법적 기준은 힘의 차이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공권력의 경찰이 비무장의 시위대에게 곤봉을 휘둘렀다. 경찰은 시위를 저지하는 목적이라고 하지만 시위대는 경찰만큼 무장을 하지 않았다. 힘의 차이에서 국가와 시민의 한계가 명확하다. 물론 무작정 폭력을 일삼는 테러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평형상태에서 힘의 불균형은 폭력 판단에 있어 가장 큰 기준이어야 한다. 이 힘의 차이의 기준은 지배와 피지배, 공권력과 시민, 억압자와 피억압자, 다수와 소수의 불균형을 평등한 관점으로 위치시킨다. 열역학제1법칙에 근거하여 폭력의 총량은 항상 같다는 가설을 세워보자. 폭력은 항상 잠재해 있다. 빛이 들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곳의 폭력을 어떻게 가늠할까. 전쟁은 폭력의 최대치가 발생하는 곳이다. 이 거대하게 분출한 폭력의 총량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위 치유되어 사라질까? 폭력의 역사는 인간의 지속과 함께해왔다. 인간 세대의 삶은 폭력의 잠재와 분출에 따른다. 잠재한 폭력의 전이는 곧 세대 승계와 함께한다.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면 그 자식 세대로 잠재된 무의식으로 이어진다. 이 트라우마는 또다른 폭력의 위험을 알린다. 즉, 더 좋은 체제와 환경으로 인간이 진보한다는 착각은 더 많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열역학제2법칙은 엔트로피의 변화 개념이다. 엔트로피는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열이 이동할 수록 증가한다. 잠재된 폭력이 증가할 수록 엔트로피(여기서 무질서, 혼돈, 카오스 용어로 대치하자)는 증가한단. 혼돈은 폭력의 상태에 따라 변한다. 이러한 카오스 무질서는 폭력 평형의 주요한 변수다. 역사적 사례로 아나키즘은 무질서와 혼돈의 상징으로 국가 권력을 해체하려 했다. 이를 폭력으로 규정하고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낙인찍었지만,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아나키즘는 폭력의 평형을 이루는 역할을 했다. 프란츠 파농의 폭력에 대응하는 첫번째는 폭력이다라는 말은 무질서가 폭력을 중화시킨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자유는 무질서, 혼돈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탄생 전 원초적 우주는 혼돈 상태인 코스모스였다. 자연상태의 생명 조에는 무위의 인간의 잠재 가능성에 따른 자유인이다. 곧 신화적 질서가 원초적 우주를 무너트리고 신들의 시대가 열렸다. 노모스 인간은 곧 무위를 잃고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자가 됐다. 자유는 질서의 희생물이자 실존의 유배지가 됐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카오스 상태를 잠재적으로 발산해야한다. 그 시작은 작은 몸짓에서 부터다. 힘에 따라 파괴되는 상태를 네거티브라고 한다면 그에 저항하여 몸부림치는 소소한 몸짓은 폭력의 평행 상태를 유지케 하는 포지티브 힘이다. 이 포지티브는 니체가 말한 긍정적 힘의 발현, 힘의 의지와 연을 같이한다. 폭력을 발현시키는 권력에 대응하여 주인의 삶을 사는 위버멘시(초인)는 이 경계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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