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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선택적 인식과 확증편향

NO WAVE 2017.01.03 12:22

선택적 인식과 확증편향

 

우리는 인식할 때 듣기와 보기로 한다. ‘보다 see’와 ‘듣다 ‘listen’는 인식의 영역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다. 특히 이해하다, 알았다고 할 때 I see라고 표현하듯이 인식의 영역은 시각과 음성적 언어와 떼어낼 수 없다. 보기와 듣기는 주관적 인식에 따르고 이에 따른 언어 법칙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런 주관적 인식은 물리적 음성문자체계뿐만 아니라 주관적 심리가 좌우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자기가 듣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하는 선택적 인식을 한다.

 

구조주의 음운론으로 구조주의 언어학의 선구자인 야콥슨은 언어 전달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여섯 가지로 보았다. 모든 언어 행위는 발신자(addresser)가 수신자(addressee)에게 원하는 메시지(message)를 보낸다. 메시지가 이루어지려면 그 언술되는 언어와 관련된 상황(context) 또는 지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수신자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언어라는 형식을 취하든지 또는 언어화할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는 약호 체계(code)의 요소가 필요하며, 이는 완전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부분적으로 발신자와 수신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한다.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연결이 되는 접촉 (contact)이 있어야 의사 전달이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다.

 

상호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언어라는 기호체계라면, 현시대에서 언어라는 형식을 취하여 언어화할 수 있는 체계는 장치, 또는 미디어라 할 수 있다. 메시지를 잘 전달하려면 발신자와 수신자의 상호 공통 언어를 바탕으로 상호 인식 체계의 공통점이 필수이다. 그러나 주관적 인식체계는 다르므로 메시지의 전달은 수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신자의 인식이다. 수신자가 다르게 메시지를 받아들일 경우 언어 전달 행위는 인식의 부조화를 이룬다. 이런 인식의 부조화는 수신자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신자가 모든 메시지를 받을 것이냐, 선택적으로 받을 것이냐 또는 현상학적 도구연관성과 관련이 있다. 내가 선택적으로 받을 때는 나의 도구연관에 따라 주관성이 들어가는-이를 비판적 인식 차원 이라 해보자- 의지가 있겠다. 그러나 현시대의 메시지 전달 방식은 미디어 장치들을 매개로 한다. 개인 차원에서 전달은 작은 단위에서 언어로 의사전달이 되겠지만, 집단적 세계에서 메시지 전달방식은 미디어 장치에 더 많이 의존한다.

 

“나는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기에 앞서 많은 메시지가 시간에 앞서 휙휙 지나간다.”

 

미디어는 현전을 초월하는 비현전으로 존재 방식을 거부한다. 선택적 인식의 주관성은 과학에서 확증편향(Confirmatory bias)과 유사하다. 확증편향은 어떠한 명제에 대해 가설을 확증하는 근거는 신뢰하는 반면, 반증은 축소하거나 무의미하게 여기는 현상이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해서 확신할 수 있는 증거(확증)는 수용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반대되는 증거는 배척하고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확증편향의 주요 증상은 가설을 확증하는 증거에 몰입하고,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호하여 선택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때 주어진 정보의 객관성은 증거 수집을 위한 판단에 있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개인의 주관에 의한 선택적 사고방식으로, 쉽게 말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지적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확증편향의 원인은 자기 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의견은 틀린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를 중요한 것으로 인지하고, 기존의 관점과 충돌하는 정보의 가치는 평가절하된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축소, 왜곡하는 재해석의 자기합리화가 발생,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디어 장치를 통한 정보의 전달은 자신의 주관적 인식의 선택을 더욱 강화한다. 내가 선호하는 장치로부터 나는 선택한다고 믿지만, 과연 선호하는 장치는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더 많은 장치를 통한 다량 정보의 제공은 지식체계를 폭넓게 한다. 반면에 선별할 수 없는 다량의 기호를 노출한다. 인터넷의 예를 들자면, 초창기 인터넷 사이트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각종 정부, 학술, 기업의 사이트는 구축됐고, 개인은 블로그와 콘텐츠를 양산했다. 그러나 포털사이트의 등장은 정보 이동의 집중화 현상을 만들어 냈다. 검색의 선별적 제공뿐만 아니라 뉴스 미디어의 배치는 접속의 집중화로 이어졌다. 정보 자체는 늘어났지만, 정보의 노출은 어떤 프레임 안의 커다란 체계에 갇힌 폐쇄적 구조가 됐다. 이런 구조 안의 개인 접속자는 거대한 담론인 에피스테메(상징적 실재) 내의 분열 된 주체일 뿐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에서 무의식은 언어와 같은 구조를 되어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하나의 언어활동으로서 구조화되어 있다’. 언어 활동은 주체가 언어를 이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말해지는’ 것이다. 의지할 데 없는 무력한 존재인 주체를 타자가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근원적인 구조를 가리킨다. 주체는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어느새 타자가 되어 ‘타자의 욕망’을 가지고 자기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타자로의 자기 소외는 주체의 형성에 있어서 구성 요건이며, 주체는 처음에서 분열된 구조로 되어 있다.

 

미디어에서 주관적 선택적 인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되지는’ 것이다. 이런 분열된 선택은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 내가 선택한 정보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언어적/무의식적으로 선택된 정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정신은 분열할 것이다. 이런 분열된 구조를 착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이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통적 표현방식으로 메시지는 전달한다면 이데올로기는 메시지를 매개하기 위한 사고의 틀에서 작용한다. 선택적 인식의 틀은 각종 이데올로기의 구조에 따른다. 이런 틀을 깰 것인지를 묻는 것이 바로 존재의 물음, 실존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속해있는 경계를 뛰어넘는 인식의 틀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실존일 것이다.  나는 이런 진정한 실존을 위한 틀을 뛰어넘는 경계에 대해 앞으로 탐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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