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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갑작스럽게 왕이되다

마치 어제처럼 2019. 12. 31. 04:19

세종 갑작스럽게 왕이되다


세종대왕은 세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갑자기 왕이 되었다. 


하지만 꾸준한 학문연마와 유능한 관료들을 자기 곁에 두어서 약점을 극복해 학문에 큰 성과를 거뒀다. 


무에도 관심이 있어 군사들을 훈련시켜 쓰시마 섬을 정복하게 하고, 북방을 개척하여 사민정책에 착수했다.



맏형 양녕대군을 대신하여 갑자기 왕위에 오르다.


갑자기 세자가 된 세종. 


세자로 책봉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왕위에 오르게되어 제대로 된 세자교육을 받기는 어려웠다. 


조선 역사상 가장 준비되지 않은 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종이었다. 


아버지 이방원조차 죽지 않고 왕위에 오르자 신하들 앞에서 행실이 막연했다. 


신하들이 정책 실행을 건의하자 그는 상왕(태종)에게 묻겠다고만 했다.



학습능력과 유능한 신하들로 약점을 극복한 세종


세종은 어떻게 이런 약점을 극복했을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끊임없는 학습을 통한 자기 계발! 두 번째는 유능한 신하를 옆에 나란히 두는 것이었다.


우선 세종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활자에 중독되어 있다. 


다래끼가 났을 때 신하들은 책을 숨기기까지 했다. 


학문을 통해 부족한점을 메우려 하자 신하들은 스승이 되어 왕을 가르치기 위한 경연을 촉진하였다. 


오히려 그의 신하들은 세종대왕에 대한 지식 때문에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세종은 또한 그들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연구 기관인 집현전을 만들었다.


둘째! 그는 유능한 신하를 통해 정치를 이끌었다. 


자신감이 부족하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받았다. 


우선 6조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도를 바꾼다. 


그러나 군인과 병사들은 여전히 왕의 통제를 설계하여 왕위가 너무 약하지 않게 한다.


검증된 사람에 대한 장기간의 중용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대표 정승은 황희! 


기록으로 미루어 황희는 청백리였던 것 같지는 않았다. 


뇌물과 간통, 부정부패로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그러나 실력은 최고였기 때문에 87세까지 영의에서 근무했다.




쓰시마 섬을 정복하여 북쪽으로 가다


학업에 큰 성과를 거둔 세종! 


하지만 그는 무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정말 완벽한 왕이지요? 


그는 군사 훈련을 계속하며 무기 개선에 힘을을 쏟는다. 


가장 유명한 업적 중 하나는 쓰시마 섬의 정복이다. 


왜적들이 계속 남해안으로 건너가 사람을 괴롭히자 세종 때 적의 본거지인 쓰시마 섬을 치기로 했다. 


대성공이라 세종은 자신감을 얻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북방을 개척하게된다. 


우리 나라 북부에는 여진족이 살고 있었다. 


세종은 여진족을 몰아내면서 4군 6진를 개척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척한 땅에서 사는 것을 피했다.


북방 국경도 춥고 농사짓기도 어렵고 여진도 약탈당하니 누가 살고 싶었겠는가?


고려시대에는 동북 9성을 개척했지만 관리가 어려워 여진에게 돌려줘다. 


영토는 그 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살 때에만 유용하게 된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마련한 특단의 대책!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것을 사민정책이라고 한다. 충청, 경상, 전라도 사람들은 주로 4군 6진에 이동한다.


사람들은 이주하지 않으려고 로비를 했고 팔을 자르고 다쳤다. 


세종은 사민정책 때문에 일시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잃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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