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er - Arthur Russell and Nicky Siano Bass - Wilbur Bascomb Drums - Alan Schwartzberg Guitar - David Byrne Producer - Arthur Russell , Nicky Siano Vocals - Myriam Valle
Side A Kiss Me Again (13:04) Remix - Jimmy Simpson
Side B Kiss Me Again (Version 12:42)
New York, Disco, No Wave, Talkingheads, Arthur Russell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이 있을까?정답은 Dinosaur의 싱글 Kiss me again 이다. 아방가르드 첼리스트 Arthur Russell과 Nicky Siano의 언더그라운드 디스코의 만남은 Loose Joints에서 시작되었다. 1978년 Kiss me again을 시작으로 Dinosaur라는 이름으로 뉴욕 특유의 언더그라운드 디스코 음악을 녹음한다. Talkingheads의 David Byrne이 기타 세션으로 참가하여 Fuzzy한 기타음을 얹혀주고 Myriam Valle은 Kiss에 대한 애절함을 노래한다. 중간 부분의 첼로음은 Arthur Russell이 연주했다. Dinosaur를 계기로 Arthur Russell과 Nicky Siano는 Dinosaur L로 언더그라운드 디스코 싱글 음반들을 발매한다.
역시 여름엔 신나는 디스코가 최고다!!!
최근 수영과 농구 등의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부분은 몸이 너무 뻣뻣하다는 것이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쉽게 지치고 유연성도 부족하다. 특히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 동작도 부정확하고 장기간 동안 운동하면 쉽게 지친다. 그 동안 어깨가 아픈 이유가 힘이 너무 들어가서였다. 그래서 꾸준히
반복 동작을 통해 몸에 힘을 빼고 유연성도 많이 기르려고 한다.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던 거 같다. 한마디로 유연성이 부족했다. 모든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 일방적인 치우침의 인간 관계도 있었다. 너무 잘하려는 마음 가짐에 오히려 일이
틀어져버리는 경우가 그렇다. 운동하면서 힘을 빼니 부자연스러운 동작도 없어졌고 유연성도 많이 좋아졌다. 이런 것처럼 나의 내면도 휴식과 여유를 가지려 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한쪽에 잔뜩 힘이 들어가다 보니 많이 삐걱거리고 있다. 특히 MB 정부 들어서 뻣뻣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변의 시선은
보지 않고 귀를 닫아버리며 일방 통행 식 정책에서 사회가 경직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 민국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걸어가려고 무리하면서 절뚝거린다. 오른팔만 비대해져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MB정부는 이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일시적인 영양제와 링겔만 주사한다. 그러면서 잘못된 유연성을 이야기한다. 노동, 자연, 화폐의 유연성 정책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몰락 이후 다음 시대로 주목 받고 있는 칼 폴라니의 이론에 의하면 노동, 시장, 화폐의 시장화를 시도할 경우 재앙에 이른다고 예견했었다. 이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MB 정부가 추구하는 유연성 정책은 선순환을 위함이 아니고 신자유주의식 시장화이다. 진정으로 지금 필요한 건 힘을 빼고 다리까지 영양을 공급하는 정책을 통해 노동, 자연, 화폐의 공정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렇듯 너무 힘들이 들어가고 유연성이
부족하다면 쉽게 피로해지고 순환 자체도 어긋나버린다. 더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린다. 이미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망가져있거나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 이럴 땐 주변을 돌아보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상담이 필요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다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순환이 중요하다.
스스로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선언했다. 세상의 모든 억압과
권위를 깨기 위해 30대에 Anarchist 선언을 했다. 그리고 사랑을 시작했다. 열정적인 사랑 앞에 권위적이고 상대방을
억압하는 사랑을 했다. 사랑하는 이를 지배하고 우위에서 서며 스스로 권력을 창출하는 연인. 그토록 혐오했던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배했다. 권위에
중독된 사랑은 자유의지를 꺾어버렸다. 많은 혼란 속에 나는 다시 자유로워져 모든걸 후회하며 사유하는
인간이 되었지만 이미 그 사랑은 떠나버린 후였다.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행동은 사랑을 지배했다. 아나키즘의 신조는 깨져버리고 더 많은 고통이 따랐다. 나는 더 말뿐인
아나키스트였다. 그리고 Anarchy Love에 대해 다시
성찰한다.
이상적인 Anarchy Love가 존재할까? 남녀간의 사랑은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공유하며 하나가 된다. 자유의
의지는 서로 공유하는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랑의 주고 받음은 또 다시 갈등을 유발하고 일방적 관계의
딜레마에 빠진다. 일방적인 딜레마. 연인이 사랑할 때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방적 관계가 시작되면 한쪽에서 눈먼 사랑은 억압을 통해 사랑을 쟁취하려 한다. 쟁취하고 설득하는 쪽은 일방적 관계의 지배자 위에 선다. 상대방은
억압을 느끼고 소극적 관계를 지속하고 상대방의 집착을 받아드리며 사랑의 우위에 선다. 양쪽은 서로에게
권력 관계를 지니고 사랑은 합일 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린다. 두 권력의 충돌 속에 사랑의 긍정적
요소인 개인의 사랑에 대한 자유 의지는 사라진다. 그래서 사랑의 시간은 더욱 고통스럽고 결국에는 파국에
이른다.
Anarchy Love에서 개인의 자아는 사랑을 통해 사랑이라는 공동의식으로
확장한다. 상호부조는 각자의 성별, 성장배경, 주변환경, 성격, 정체성에
대해 공동의식을 발현하고 상대방을 존중 하게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남자와 여자는 이성적 접촉과 감정적인
반응으로 개인의지를 더욱 키워간다. 개인의 의지에 대한 자유는 혼돈을 동반하지만 사랑에 대한 상호부조가
다시금 서로를 이해하게 만든다. 충돌과 결합의 혼돈은 자아의 자유뿐만 아니라 결국 공동체로의 확장시킨다.
Anarchy Love를 지향했던 가치관은 스스로의 행동에 무참히
깨졌다. 후회와 안타까움, 절망이 아나키스트의 마음 속에서
떠돈다. 사랑의 종말. 공허한 마음에 Anarchy Love에 대해 성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