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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1부 탄광 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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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1부 탄광 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NO WAVE 2010.03.22 10:26

위건부두로 가는길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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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광고 카피는 영국 북부 탄광 지대에서 써 내려간 노동 OTL 였다. 노동 OTL은 한겨레21에서 진행하는 인권, 노동 OTL 시리즈이다. 한겨레21의 기자들은 직접 노동 현장에서 노동을 경험하며 노동 OTL 기사( http://h21.hani.co.kr/arti/SERIES/46)를 썼다. 이는 한겨레에서 출판한 조지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맞닿아 있다.

 

조지오웰은 1936 6월 결혼 이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스페인으로 떠났다. 전체주의의 유럽 확산을 걱정했던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2부에서 오웰은 자신의 사회주의 사상을 저술하고 있다. 또한 1부는 탄광촌의 노동 현실을 직접 체험을 통해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쓰여졌다. 인도제국 경찰로 버마에서 영국으로 귀국한 이후 1929년까지 런던과 파리에서 부랑자 생활을 기록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같은 작업이었다.

 

1부의 내용은 레프트 북 클럽에서 영국 북부의 탄광 지대의 노동과 실업 문제에 대한 의뢰를 르포로 쓴 글이다. 언론에 몸 담았던 오웰의 탄광 지대에 대한 르포르타주는 실제적 경험에서 오는 인상을 묘사하고 세부적 정보도 담고 있다


우리는 탄광을 생각할 때 깊이와 더위를, 암흑을, 그리고 채 벽을 파내는 시커메진 사람을 생각하되, 기어서 몇 킬로미터를 왔다 갔다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더구나 시간의 문제도 있다. 광부가 일곱 시간 반 단위로 근무 교대를 한다고 하면 별로 긴 것처럼 들리지 않겠지만, 거기다 매일 적어도 한 시간, 보통은 두 시간, 때로는 세시간에 달하는 여행 시간을 더해야 한다. 물론 이 여행은 법적으로 작업이 아니며 그래서 광부는 그 대가를 받지 못한다.  Page 42. 2장 막장 생활을 경험하다 중.  


▶ 탄광 노동자들이 수십 킬로 미터를 근무를 위해 일곱 시간 반 동안 좁고 어두운 공간을 이동해야 한다. 이를 오웰은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노동을 위한 여행.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여행인 것이다. 상상해 본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첫 체험이었던 오웰이 엄청나게 힘들어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하기도 힘든 과정이다. 탄광의 어두운 이면이 그대로 전달되는 대목이다.

 

우리가 영국 북부에서 차를 몰고 가며 도로 밑 수백 미터 지하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차를 모는 것은 그 광부들인 것이다. 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중략어떤 육체 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 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어떤 면에서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age 49. 2장 막장 생활을 경험하다는 중.


오웰은 노동을 통한 계급화에 대해 기술한다. 계급화는 인간을 갈라 놓는다. 상층부에 위치한 권력층은 지하의 광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산업화에 의한 이익일 뿐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망각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 앞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 오웰은 스스로 지하로 들어가 광부가 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광부들의 자괴감은 지식인으로서의 우월이라는 오웰의 지적에서 현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이지만 타인의 노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스스로 우월한 존재로 타인의 노동을 망각해버린다.

 

언젠가 나는 함께 홉을 따다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일 이 있다. 나는 바로 그들이 절대 그걸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이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능한 존재인건 분명했다. Page 67. 3장 광부들의 삶 중 그들은 누구인가? 중.


바로 부르주아들이다. 노동자를 통제하는 자본가들. 노동조합을 마치 사회주의 빨갱이로 여기는 그들은 이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며 영원히 착취로 군림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부르주아 출신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합당한 한계 내에서 얻을 수 있다는 일정한 예상을 하고서 살아갈 수 있다. 때문에 비상시에 배운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재주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교육은 대게 그 자체로는 거의 쓸모 없다. 그래서 남을 부리는 위치에 서는 데 필요한 낯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전면에 나서려는 경향은 언제 어디서나 당연시되어 온 듯하다나는 지적인 얼굴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떤 혁명이건 지도자는 대개 유식한 말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Page 68. 3장 광부들의 삶 중.


배운 사람들, 지식인들은 더 많은 교육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부르주아의 범주 안에서는 그들만의 이권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시민이라는 권리이고 시민으로 누리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앞에 나서려고 한다. 혁명으로 권력을 지닌 부르주아들이 처단되면 또 다른 유식한 말을 쓸 줄 아는 이가 그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노동자는 그저 혁명의 일원일 뿐이고 언제나 패배자이다.

 

사람들에게 번듯한 집을 줘보라.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번듯하게 가꾸는 법을 금세 배울 것이다. 나아가 근사한 집을 주면, 그들은 그 수준에 맞춰 보다 자존적이고 청결한 생활을 해나갈 것이고, 아이들은 더 나은 삶을 시작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이런 혐오스러운 동네는 다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번듯한 집을 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슬럼을 부수면 다른 것들까지 부숴야 한다는 점이다. 집들은 절실히 필요하지만 충분히 빨리 건설되지는 않고 있다. 한데 그나마 재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집들이 새것이고 흉한 게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Page 94. 4장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주택 문제 중.


주택은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주택을 보자면 진정 살아가기 위한 공간인지 의심스럽다. 집이 부의 상징이고 투기를 위한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빈민에게 노동자들에게 살기 위한 공간을 주어진다면 그건 정말 아름다운 공간 일 것이다. 재개발과 재건축만 해도 그렇다. 1930년대 영국의 주택 현실이 현재 서울의 방식과 닿아있다. 마치 모든걸 파괴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며 가슴 아픈 참사까지 벌어졌다. 오웰 이 말하듯 새것이고 흉한 게 문제가 아니다. 진심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질까.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들보다는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무기력감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떨쳐버리기 어렵다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어릴 적부터 갱도 안에서 일해오며 광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도록 길들여져 온 사람을 생각해보자. 허구한 세월을 대체 무엇으로 다 채운단 말인가?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알아볼 일거리도 없거니와 그런 사실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다. Page 111. 5장 실업 수당으로 사는 사람들 중.


노동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인 노동자에게 실업이란 커다란 고통이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출신 학력을 구분하지 않고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것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청년 실업을 걱정 해야 하는 20대들과 언제든지 해고 될 수 있다는 노동자들은 언제나 불안감을 지닌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고 서로 불신을 지니는 사회는 기대감 마저 발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고통도 모르고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만 하는 지도자가 있는 국가가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중산층은 여전히 실업수당이나 타먹고 사는 게으름뱅이란 말을 썼으며 그런 자들은 원하기만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노동 계급 자신에게도 스며들었다그들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일을 하도록 길러졌다가, 이제 다시는 일할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져 난감해졌다. 그런 처지에서 그들은 먼저 자괴감에 시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실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랬다. 실업은 당신 개인에게 닥친 재앙이었으며, 그것은 당신 자신 탓이었던 것이다. Page 116. 5장 실업 수당으로 사는 사람들 중.


산업화 이후 영국은 왕족과 귀족층, 정부관료 및 자산 상류층, 중산층, 노동계급, 이민자 및 이주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경제 발전과 함께 화이트컬러와 블루컬러 계층이 중산층을 이루는 현실과는 달랐다. 노동계급의 대부분은 피라미드의 하부에 있었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계급으로 나눠진다. 더 불행한 건 그 계급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낙인이 찍히고 그 낙인에 따라 행동하는 노예. 주인은 그 노예에 대해 온갖 비난을 하면서 더욱 자신과 구별 짓기를 한다. 실업은 사회적 문제이지만 언제나 당신 개인의 문제라면서 모른척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회적 철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라인 지방을 다시 점령했을 때 나는 우연히 요크셔에 있었다. 히틀러나 로카르노, 파시즘이나 전쟁의 위협 같은 건 그곳 사람들의 스쳐가는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반면에 경기 일정을 미리 발표하지 않겠다는 축구협회의 결정은 온 요크셔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전부 강탈당한 상당수의 노동 계급이 생활의 표피만을 누그러뜨리는 값싼 사치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물론 전후에 값싼 사치가 발달한 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에겐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피씨 앤 칩스, 인조견 스타킹, 연어 통조림, 할인 초콜릿, 영화, 라디오, 진한 차, 축구 도박 같은 것들이 혁명을 막은 게 사실인지도 모른다말하자면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제조업자들과 값싼 고통 완화제가 필요한 배고픈 사람들의 형편이 그럭저럭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Page 122. 5장 실업 수당으로 사는 사람들 중.


현실이 고통스럽고 변화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고 냉소적으로 되어버린다. 값싸게 사치품을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값싼 사치를 즐긴다. 이러한 보상은 물질적 위로를 준다. 불합리함에 저항이 폭발하면 혁명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혁명은 값싼 사치품 보다 더 값싼 이상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관찰해보면 너무나 신기하게도 서로 이빨이 잘 맞물려 돌아간다. 소비는 욕망을 연료로 자본주의라는 생산 체제를 유지시킨다.

 

노동 계급의 시각으로 보면 중산층의 삶은 병적이고 무기력한 데가 많은 것이다. 노동 계급의 가정에서는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따스하고 건전하고 인간적인 공기가 있다. 나는 일거리가 꾸준하고 벌이가 괜찮다면(그러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육체노동자가 배운 사람보다는 행복할 가능성이 많다고 감히 말하겠다특히 겨울날 저녁에 차를 마시고 난 뒤, 조리용 난로에선 불꽃이 춤을 추고, 난로 한쪽에선 아버지가 셔츠 차림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경말 결승전 소식을 읽고, 어머니는 다른 한쪽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아이들은 1페니 주고 산 박하사탕 때문에 행복해하고, 개는 카펫에 드러누워 불을 쬐는 정경을 볼 수 있는 집은 정말 가볼 만한 곳이다. Page 157. 7장 그리운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 중.


오웰이 묘사하는 노동계급 가정의 풍경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어릴 적 추억의 풍경들이다. 거기에는 오웰이 말하듯 행복이 있었고 따스하고 건전하고 인간적인 공기가 있었다. 물질이 풍요하고 돈이 많을수록 행복한가? 현재 살고 있는 우리가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오웰은 노동계급을 예찬한다. 그 조건은 삶을 영위하는데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하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이런 것이 바로 평등이다. 그 평등 속에 노동계급이 지니는 보편적인 행복이 있다.

 

200년 뒤의 유토피아적 미래로 건너뛰어 가본다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해 본 것들은 거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그래도 세상은 마찬가지로 낯설어 보일 것이다. 창도 없는 오두막, 굴뚝이 없어 눈을 맵게 하는 장작불, 곰팡이투성이 빵, 형편없는 생선, 이와 빈대, 괴혈병, 해마다 태어나는 아이와 해마다 죽는 아이, 경악스러운 지옥 이야기로 괴롭히는 사제의 세상일 것이다우리시대가 살기에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근대 기술의 승리도, 라디오도, 영화도, 매년 5천 종씩 출간되는 소설도, 애스컷 경마장의 인파도, 명문교 이특과 해로의 크리켓 라이벌전도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하게도 내 기억에 남은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며, 그 중에서도 아직 영국의 번영기이던 전쟁 이전의 내 어린 시절에 이따금 보았던 정경들이다. Page 159. 7장 그리운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


오웰의 200년 뒤 상상의 묘사는 이채롭다. 소설<1984>에서 묘사했던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오웰은 노동 계급의 거실 풍경을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표현한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풍경. 그러나 이 풍경은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 끄집어 내고 유지해야 할 것들이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들려주었던 옛 기억. 그 아이가 커서 아버지가 되어 아이에게 들려주었던 기억들은 이어지고 이어져야 한다. 거기에 오웰이 말하는 일깨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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