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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 - 조지 오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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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 - 조지 오웰

NO WAVE 2010.03.22 10:43

위건부두로 가는길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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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은 사회주의자로서 오웰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과 비판이 담겨 있다. (# 이 후기는 오웰의 사상을 실제 글로 전달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약간의 편집만으로  조합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혀둔다.)


오웰이 인도경찰 파견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온 건 식민지버마에서 경찰의 경험으로 나는 모든 정부는 악이며, 처벌은 언제나 범죄 자체보다 해로우며, 사람들은 믿고 가만히 내버려둬야만 점잖게 행동한다는 무정부주의 이론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5년 동안 번민 끝에 얻은 결론은 모든 피 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압제자에 맞서고 싶었다. 동양인 못지 않게 비참한 생활을 하는 밑바닥 노동계급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 사회는 산업화 이 후 계층화 되어 있었다. 오웰은 사회주의자 중산층의 속물 의식을 꺼내 든다. 모든 중산층은 계급적 편견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 계급 차별에 의한 속물 근성은 애국심과 하층민을 멸시하는 법을 배우는 초등교육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편견은 노동 계급을 너무 잘 살도록 해주면 안 된다는 경계심을 지닌다. 중산층이 사회주의자를 받아들여 공산당에 가입했다면 그는 습관적으로 자기 계급사람들과 어울린다. 부르주아와 함께 있는 게 편하고 음식, 와인, 의상, 독서, 그림, 음악, 발레에 대한 취향은 여전히 부르주아이다. 프롤레타리아를 이상 시 하지만 습성은 무관하다. 노동계급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교육에 반응한다.

 

속물근성으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속물근성은 모든 사람에게서는 확인할 수 있지만 자신 만큼은 예외적인 악덕이다.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그렇다. 나는 속물이 아니다가 보편적인 신조가 되어버렸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게 엉터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 모두 계급 차별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것이 정말 없어지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은밀한 소신을 지닌다.

이러한 위선은 진보적 견해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자면 제국주의이고 지식인, 좌파는 반제국주의자 이지만 대영 제국의 유지를 바란다.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좌파들이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부르주아의 관념이다.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이 품게 되는 반감이다. 부르주아는 죽었고, 부르주아는 파탄 났고, 부르주아의 가치는 경멸할만하다는 식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상투어 때문에 부르주아의 반목을 일으킨다. 스물 다섯 때는 열렬한 사회주의자이던 중산층이 서른 다섯 때는 거만한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파시즘으로 다가간다.

 

왜 사회주의자가 지지 받지 못하는가? 오웰은 질문한다.

사회주의자인 오웰은 개인적으로 사회주의는 너무나 초보적인 상식이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사회주의가 아직도 자리를 못 잡은 것에 이상해서 놀라곤 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사회주의 대의는 후퇴하며 기반을 잃고 있다. 보통 사람은 사회주의에 적의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인기 없는 이유를 언급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역사적 필연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이 실현될 것이라고 한 게 불과 어제 일과 같다.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공격한다. 일반인들은 사회주의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라며 중산층 속문주의의 과격화에서 찾는다. 별난 사람이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는 별난 사람이다.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해 애쓰면서 실제로는 구질구질한 사회적 위선에 악착같이 매달린다. 공산주의자들의 기술적인 전문어 이데올로기, 계급의식, 프롤레타리아 연대 일상어와 동떨어져 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심각한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정, , 합의 트릭에 관심 있는 노동자는 없다.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와 싸움으로서 부르주아가 된다. 그들은 노동을 외치며 실제 광부, 제철노동자, 직조 공, 부두노동자, 건설인부를 만나본 적이 없다. 결국 사회주의자들의 숨은 동기는 병적으로 심한 질서 의식뿐이다. 혁명이란 똑똑한 우리가 하층 계급인 그들에게 부여할 일련의 개혁이라는 권위 의식뿐이다. 혁명이 성공해도 또 사회는 바뀌지 않고 지배 계급만 바뀐다는 것이다.

 

또한 오웰은 사회주의는 어떻게 파시즘을 키웠는가? 를 짚고 넘어간다.

일반적으로 파시즘을 지배계급의 술책으로 치부하지만 공산주의가 파시즘은 낳았고 원인을 제공했다고 오웰은 분석한다. 사회주의는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 체제라는 관념과 결부한다.

사회주의는  기계에 대한 대량 생산 세계의 모든 지역 간에 지속적인 상호 연락과 물자 교환 중앙 집권화의 지배 생활 수준이 비슷해져서 교육이 획일화 미국처럼 고도의 기계화 사회로 변한다.

한편 소련의 기계화는 기계적 진보의 열광적인 종교화이다. 사회주의는 질서와 효율의 세계라는 사회주의자의 주장에 과학과 기계에 대한 적대감을 지닌다. 이에 따란 종교와 과학은 충돌과 갈등을 빗는다. 진보 관념의 모순, 기계적 진보의 경향은 환경을 안전하고 편하게 그러나 정작 개인은 자신을 용감하고 강인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기계가 압도함에 따라 인간 활동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이 일에 해방되고 다른 무얼 한다는 것인가? 사회주의자는 언제나 기계화, 합리화, 근대화에 호의적이거나 호감을 지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진보사회주의를 떼놓을 수 없다고 한다. 기계를 혐오하는 사람은 사회주의를 혐오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념은 사회주의-진보-기계-러시아-트랙터-위생-기계-진보를 연상 시킨다.

지식인에게 파시즘은 거울에 비친 상과 같다. 파시즘은 결국 알 수 없는 사회주의자가 무엇을 하든 그 정반대로 하겠다는 결단이다. 결국에 파시즘은 유럽 전통의 옹호자 시늉을 할 수 있었으며, 기독교 신앙과 애국주의와 군사적 가치에 호소할 수 있었다. 전체주의 국가라는 비전에서 전체주의 비전이 자리 잡는다. 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다.

 

오웰은 사회주의가 진정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정의자유라는 두 가치관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버렸다. 똥떠미 속에 감춰져 버린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오웰이 보는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압제가 타도되는 꼴을 보기 바라는 사람이다.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가 압제의 태도를 뜻하는 핵심적인 사실을 이해한다. 자본가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구분에서 중산층은 어디에 위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한다. 오웰은 스스로 한 주 소득이 3파운드 밖에 안 되는 중산층 출신의 노동계급이라고 정체성을 밝힌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중산층 출신에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때문에 괴롭히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인간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며 열등한 인간이라 주입시킨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은 반감을 품는다.

 

오웰은 사회주의의 속물근성을 버리고 사회주의 확산을 위해 제시한다. 정반합은 언급하지 말고, 계급의식, 수용자에 대한 수용이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의 연대의 말은 줄이는 게 좋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실업자들의 곤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다. 파시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파시즘을 막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스페인으로 긴급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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