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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평전 - 베르나르 앙리 레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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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평전 - 베르나르 앙리 레비

NO WAVE 2010.08.12 14:37
사르트르평전
카테고리 인문 > 철학 > 서양철학자 > 장폴사르트르
지은이 베르나르 앙리 레비 (을유문화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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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적 인간 사르트르.

제국주의, 식민지, 세계대전, 식민지 독립, 해체의 시대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를 뽑는다면 당연히 사르트르 일 것이다. 저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사르트르를 세기적 인간으로 사르트르의 생애에서 영광과 몰락을 쫓는다.

 

사르트르 철학의 근거는 프랑스 문학가인 앙드레 지드,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먼저 나타낸 사르트르는 당연히 동시대의 작가인 지드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생의 철학의 베르그송과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현상학에서 실존 철학을 제시한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있었다.

 

사르트르의 영광

흔히 니체가 제시한 초인을 나치즘의 근원으로 뽑는다. 그러나 <존재와 시간>으로 존재론적인 실존철학을 제시한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에 대한 증거들로 어떻게 한 사람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임과 동시에 나치주의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사르트르는 첫째 주체의 문제, 둘째 역사의 문제, 셋째 언어의 문제, 마지막으로 존재의 문제로 해석을 한다.

 

이러한 해석에서 제시되는 것 중 사르트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앙가주망이다. 그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자발적으로 참여된으로 지식으로서 실천을 제시함으로써 시와 초현실주의에게 거침없는 비판을 가함으로 논쟁을 일으켰다. 

 

사르트르는 논쟁적 인간이었다

사르트르는 부정성에 근거한 반휴머니즘을 내세웠다. 반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휴머니즘이 근대 계몽주의에 근거하여 유럽 중심의 합리주의로 식민지와 제국주의에 경도되었다. 이는 내부적 모순으로 20세기 초 전체주의인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을 양태하여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이러한 상반되는 양쪽의 극단은 해겔의 반휴머니즘, 스피노자적 반휴머니즘, 질 들뢰즈적 휴머니즘, 알튀세의 겸손한 휴머니즘, 장카키이예스의 반휴머니즘으로 나눌 수 있다. 사르트르는 휴머니즘에 대해 가차없이 공격을 가한다. 첫째 사고는 심리학이 아니다, 둘째 인간이라는 건 결국 그런 존재인가? 명예와 특권을 누리는 존재인가? 셋째 우리는 인간을 유예 상태로만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휴머니즘의 형이상학에 대한 급진적 반증으로 될 주체이론은 다루지 않는다

 

반휴머니즘을 내세운 사르트르는 전체주의를 거부하며 반 파시스트적인 사회적 참여를 했다. 그러나 <변증법적 이성비판> 이후에 변절 아닌 변절의 평가를 받는다. <존재와 무>는 그 절정에 이르렀고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사르트르는 우파적 아나키스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동시대의 실존 철학의 논쟁은 가장 친한 동료였던 카뮈와의 영원한 이별의 결과를 낳았다. 카뮈와 사르트르, 상반된 성향의 두 문학가이자 사상가는 왜 영원한 결별을 해야만 했는가? 

사르트르는 부정의 대표자, 자연에 대한 반대, 물질과 이물질에 대한 반대, 인류에 대한 반대, 출산에 대한 반대, 타자들과 지옥과 같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반대, 독학자의 휴머니즘에 대한 반대, 반대에 대해서도 반대, 전체에 대한 반대, 어두운 계시, 세계에 대한 끔찍한 묘사, 대상에 대한 공포와 신체의 대표적 부정성의 아이콘이었다. .

이에 반해 카뮈는 긍정적 감정, 자연에 대한 긍정, 우주적 매혹 등의 긍정성의 발현이었다. 이들의 이러한 역설적 관계는 절친한 동료였던 메를로 퐁티와의 논쟁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서로 양립할 수 있었지만 반대의 극성을 지닌 사르트르와 카뮈는 카뮈의 죽음으로 영영 다시 화해하지 못했다.  .

 

사회주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는 시대의 광기를 몰고 왔다. 레닌의 혁명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겠지만 스탈린의 공산주의는 히틀러의 나치즘과 전체주의는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의 광기를 몰고 왔다. 사르트르는 2차 세계 대전의 포로 수용소 경험 이후 개인적 아나키즘 성향에서 변신하여 집단 공동체인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사르트르는 이 후 공산당을 옹호하며 스탈린주의, 모택동 주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 서문, 폭력에 관하여, 알제리 독립,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발행했다. 포로 수용소 경험 이후의 첫번째 사르트르와 두번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 지식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실수의 관리 규칙에 대해서 폭력, 파농의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 마르크스주의, 혁명사상을 옹호하는 사르트르는 어찌된 영문인가.

 

실패한 사르트르

포로 수용소 이후 변신은 개인주의 니체적 사르트르, 무정부주의자, 반휴머니스트, 댄디, 스탕달 주의자에서 니체주의를 포기하고 사회주의, 휴머니스트, 연대성, 공동체가치,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했다.

저자인 레비는 사르트르를 길을 잃고 실패했다고 사르트르를 연민한다. 이는 카뮈와의 결별 사건처럼 독학자 사르트르의 면모였다. 그는 주변에서 고립된 독학자로서 철학자로서 해겔에 대한 도전에 실패했다. 세계의 유일한 철학자이고 마지막 철학자인 해겔,

과거에 대한 위대한 해석이 시도될 때마다 세계의 역사상 처음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는 당신들의 노력, 진리, 한계를 모두 고려했다.로 역사는 해겔 철학의 반복이라는 관념에 빠져버린 사상계에서 사르트르는 그를 뛰어 넘고 싶어했다.

해겔의 유대인, 유대교적 메시아, 해겔의 철학적 계시, 예수를 반대하는 유대인 사제들을 은유한 해겔의 유대인 해겔은 메시아가 아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다. 하지만 분명 그는 메시아이다.라며 해겔을 쫓았던 이들은 첫째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 둘째 니체와 키르케고르와 바타유와 쇼펜하우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르낭, 로첸바르크, 쇼아를 경험한 철학자 푸코가 있다. 정녕 사르트르는 해겔처럼 행세하고, 해겔주의를 숨기며 다시 철학하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해겔 앞에서 항복선언하고 깊은 슬픔에 빠져버렸다.

 

장님이 된 철학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로 노벨상을 거부했던 사르트르는 이 시기에 문학 작품에 대해 멈춰버렸다.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하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의 실패는 사르트르를 시대에서 잊혀지게 했다. 레비스트로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에 대한 비판은 구조주의의 물결에 사르트르를 휩쓸리게 했다. 68혁명의 새로운 세대들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에 영향을 받아 철학, 문학, 예술에 전 방위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더 이상 실존주의의 사르트르는 거기에 없었다.    

 

자서전적 소설 <>에서 어린 시절부터 사르트르는 아버지의 부재를 이미지와 상상력을 결합하며 글을 썼다. 실명이 되어 장님이 되어버린 사르트르는 말과 글을 잃었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보르리야르를 위시로한 구조주의, 해체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프랑스 철학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사르트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잊혀졌던 니체의 반이성 철학을 재림시켰다.

 

실존, 유대적 실존, 유대주의자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베니 레비와 일련의 작업을 진행했다. 유대주의를 끌어드려 철학을 완성하려는 노년의 사르트르, 이 것은 레비나스와의 만남이었고 발견이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레비나스의 유대교의 만남은 첫째 행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둘째 새로운 공동체 개념에 대한 효과, 셋째 역사 철학 효과, 마지막으로 도덕의 정립 가능성 효과라는 철학적 작업을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저자인 레비는 마지막 죽기전의 철학적 작업에 대해 유쾌한 사르트르, 젊음의 사르트르로 실패한 사르트르, 장님이 된 철학자를 다시금 평가하고 있다. 1980년 사르트르 서거 후 프랑스와 전세계 사람들은 그를 추모했다. 그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혼란스러웠던 근대와 현대 세계에서 개인이 바라보는 존재, 개인주의적 실존주의와 사회적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주의적 실존주의를 제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참여와 실천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문학, 예술, 철학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력과 존경을 받았던 세기적 인간, 장 폴 사르트르.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대는 어느덧, 자본주의의 또 다른 반복적 지배로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또 다시 주체를 읽고 존재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개인을 억압하고, 자본은 국가를 넘어서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의 권리 즉, 인권은 어느 시대보다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다. 근대적 이데올로기 공동체를 넘어선 진정한 개인의 자유를 통한 연대하는 공동체를 위해 사르트르의 실존적 주체는 다시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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