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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예찬: 사건과 진리로서의 사랑 본문

ANARCHY

사랑예찬: 사건과 진리로서의 사랑

NO WAVE 2013.09.09 23:51


사랑 예찬
국내도서
저자 :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 조재룡역
출판 : 길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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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 사건과 진리로서의 사랑 


사랑은 위험한 사건이다. 삶에 있어서 하나의 우연적으로 던져진 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인연이나 운명으로 믿는 이들은 사랑을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랑은 어떠한 확실성 보다는 만남에서부터 사랑하는 동안 보증되지 않는 것들이 부딪치는 불확실성의 사건이다. 사랑하는 동안 남자와 여자 두 주체에게 늘 안정과 불안정이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왜 충돌해야 하는지, 왜 어떠한 요구를 하는지, 왜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지, 왜 사랑이 힘들어야 하는지 끊임 없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의 철학가, 예술가, 문학가 들은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예찬한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시간이 영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그 증거입니다. 어떤 혁명적 행동에 참여할 때 느끼게 되는 정치적 열광, 예술작품이 실어다주는 기쁨 그리고 마침내 학술이론을 깊이 깨달았을 때 느끼게 되는 거의 초자연적인 희열은 이런 행복의 증거들입니다." 알랭바디우 <사랑예찬> 중


알랭 바디우의 사랑이라는 사건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사랑예찬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유를 하고자 한다. 바디우에 있어서 사랑의 만남을 사건 그 자체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남녀 간의 만남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의 법칙에 의하면 남녀 둘의 만남은 최초의 다수이다. 둘 만이 존재하는 다수성이다. 하나의 사랑 속에서 둘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 분리되어 존재한다. 이러한 사랑의 사건으로서의 둘의 출현은 무한한 하나의 진리만을 표시한다. 사랑을 선언하면 우연으로부터 지속성, 끈덕짐, 약속, 충실성을 이끌어 낸다. 둘은 사랑의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앎을 깨닫게 되고, 그 앎 자체도 분리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자와 여자가 각자 다르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한다. 남자가 바라보는 입장은 “우리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이고 여자가 바라보는 입장은 “우리는 둘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있지도 않았다.”이다. 남성의 입장이 사랑 그 자체로 진리를 긍정하는 것이라면, 여자는 사랑을 기축으로 하여 나머지 진리의 유형을 감싸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성을 엮어 내는 것이 여성의 입장이다. 이렇게 엮어진 진리의 보편성으로 남자와 여자의 만남 자체는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바디우가 강조하는 하나를 강요하는 동일성이 아닌 차이로부터의 진리이다. 사랑에 빠진 둘의 차이의 체험은 예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탐험한다. 폭력적으로 타인을 강제하는 동일자의 것이 아닌 둘의 다수성을 인정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사랑은 고통스럽고 위험하다. 자신을 중심으로 바라보던 세계는 이제 둘이 되어 차이를 바라보는 하나가 되기에 사랑은 끊임없이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의 중요함은 고통과 위험을 극복하는 사랑의 지속, 둘의 지속을 위한 충실성이다. 


안전한 사랑을 선택하려는 현대의 욕망의 넘침으로 인해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 만남 자체와 사랑의 포기는 이전의 자기 중심 위주의 유아론적 주체로 돌아가거나, 둘 이기를 중지하는 사랑에 충실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 앞에서의 두려움, 자기애적 상상, 결혼에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결혼은 정해진 사회 규범이다. 주변인들은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는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며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사랑은 이렇게 다수의 사건을 발생시킨다. 주체 자체를 동일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사회는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결혼 앞에서 사랑하는 커플은 사랑 자체를 포기하거나, 결혼이라는 규범 안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다수의 진리를 파괴하려는 동일성의 진리의 강요이다. 그렇게 사랑은 결혼 앞에서 멈춰버린다. 바디우는 이러한 강제된 결혼의 규범을 극복하고자 한다. 사랑은 경이롭고 행복을 동반한다. 이런 행복은 불확실성과 고통을 수반한다. 경이로움과 불확실성,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사랑의 본성이다. 연인들은 내적인 몰입과 외적인 확장으로 모순의 꼭지점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바디우는 수렴과 발산의 현기증을 일으키는 사랑의 과정을 불가능한 걷기, '다리절기' 라고 부른다. 사랑은 불가능 앞에서 걷기의 가능성으로 가능과 불가능 앞에서 항상 절뚝거린다. 이런 다리야 말로 사랑을 지속시키는 충실성의 동력이다. 그러나 다리절기 과정은 힘들기에 사랑하는 이들은 항상 고뇌와 번민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어떠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특히 결혼과 같은 규범과 같은 것의 앞에서 유아론적인 나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고 만다. 두려움은 사랑하는 주체를 고민 앞에 서게 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의 결정을 내려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고민은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라캉의 정신분석 세미나의 “주체와 존재의 의미”에서 치사인자를 통해서 사랑을 해야 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사랑이냐, 존재냐: 주체의 존재와 타자의 의미로서의 해석 http://viva9.tistory.com/508


사랑을 선택하면, 주체의 존재를 위한 사랑이고, 이는 사랑을 위해 나의 존재의 선택이다.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타인을 사랑하고 나의 존재까지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존재감까지 포기하는 것이고, 인간이 자유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만큼 사랑은 존재의 주체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라캉의 '치사인자'는 바디우의 '다리절기'와 유사하다. 사랑은 선택과 다리절기의 어려움을 넘기 위해 사유의 과정을 필요로 하며, 이 과정 자체가 둘의 다수의 사랑이 새로운 것을 향하는 사유이다. 하나가 아닌 둘의 존재를 외부의 다수를 위한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아론적인 나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어려운 선택일 수 밖에 없다. 나로 돌아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둘에 대한 탐험을 중단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사랑의 지속성은 끊어지고 둘의 세계는 사라진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사랑이라는 사건은 시간에 따른 동시성이다. 둘의 사건은 사랑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과거는 현재의 사랑에 포섭되고 서로는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며 역사를 만든다. 미래는 이렇게 현재의 사랑이 과거의 경험을 뛰어넘으면서 도래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미래로부터 비롯되는 불안이다. 불안은 현재의 사랑을 뛰어 넘지 못하고 과거의 상처 속에 머물러 있거나, 어떠한 규범의 결정 앞에서 강요 받는 선택의 산물이다.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 과거를 수렴하고 미래를 발산하는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불가능을 넘어서는 가능성의 진리이다. 사랑에 대해 둘을 지속하는 것, 다리 절기를 하면서 함께 걷는 것, 과거를 수렴하고 미래를 발산하는 것, 결정 앞에서 불가능한 결정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사랑의 과정에서 라캉의 욕망과 바디우의 사건과 진리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욕망 앞에서 실패했고, 사 랑의 지속을 위한 충실성의 중단으로 인해 좌절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예찬은 계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

알랭바디우 <사랑예찬>과 서용순의 해제

자크라캉 <정신분석의 네가지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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