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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사태의 틈, 세월호 사건 이후

NO WAVE 2014.05.14 18:46

사태의 틈, 세월호 사건


어떤 규명할 수 없지만 뚜렷한 사건이 발생하면 커다란 사태의 틈이 열린다. 단순화시킬 것인가, 복잡하게 바라볼 것인가의 선택이 남겠지만, 어쨌든 커다란 사태의 틈은 모든 것을 빨아드리며 순식간에 형태를 바꿔 놓는다. 그리고 이 틈의 공간을 메우는 것은 사회학적 과제이다. '왜'의 질문 위에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물음이 필요하다. 이 틈은 여기저기 떠돌며 공중에 부양해 있다. 우리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결할 수 없음에 버둥거린다. 여기저기에서 고통과 슬픔의 기운이 이 틈으로 흘러들어 간다. 여기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남겨진 다수이다.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자기 부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광야의 꽃과 같다. 이렇게 꽃잎은 틈을 메꾼다.


그러나 틈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 다른 차원의 틈을 만들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 틈 아래의 기회주의들이다. 그 최근의 사태에서 어땠나. 1997년 IMF 사태를 기억한다. 경제 환란이라고 불리며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며 온통 고통을 빨아들여 슬픔을 안겨줬었다. 당시에 '왜'는 있었지만, 그 왜는 '어떻게'라는 다른 차원의 방법론으로 철저히 묻혀버렸다. '왜'가 없는 틈을 메꾸려는 방법은 그 틈을 다른 좌표로 이동시켰다. 결과에 대한 원인이 승리자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 틈은 고통의 순환을 위한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틈을 메꾸는 기회를 놓쳤다. 고통과 슬픔은 또 다른 착취의 틈으로 다가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인한 여파라는 전조의 망상이었다. 


이번의 세월호는 다시 엄청난 사태의 틈을 만들었다. 지금의 방향은 '왜' 보다는 '어떻게'가 더 우선시 되며 전개 중이다. 물론 이 '어떻게'는 기회주의자들의 '어떻게'이다. 국가의 책임 보다는 민간의 책임이 앞서고 있다. 국가의 위정자들은 그 책임을 본인들이 온전히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위상으로 만들려 한다. '왜'에서 기반을 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선행되고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만, 침묵과 폭력의 언어를 앞세워 회피하려 한다. 이 회피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대책이 나올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의 틈은 위선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라짐을 곧 슬픔과 고통의 재순환이다. 고통의 순환과 슬픔의 회귀는 또 다른 사태의 틈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사태의 틈이 벌어질 때 모든 것들이 드러난다. 이를 끄집어내 재배치하고 고치며 틈을 채움은 역사의 과제이다. 그러나 온전히 틈을 다루지 못하면 틈은 더 많이 생채기처럼 남는다. 이러한 틈을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위한 악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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