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AVE

짧은 글, 2014년 6월-8월 본문

ANARCHY

짧은 글, 2014년 6월-8월

NO WAVE 2014.08.21 10:34

세월호 참사/ 손에 잡히는 대상/ 교황의 환대



Facebook 2014.6.4

가해자가 피해자인척 코스프레하면, 피해자는 오히려 가해자가 된다.

이런 전복은 불합리한 사회(정의가 작동하지 않는)로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박근혜의 눈물"

"세월호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 


과연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일까?





Facebook 2014.7.17

세월호 특별법에서 의사자 지정과 특례입학이 논란 중이다. 그러나 유가족특별법에는 보상과 배상안에 대한 내용만 있지 의사자 지정과 특례입학을 위한 특정 문구는 없다. 단지 각 정당이 발의한 특별법에만 포함돼있다. 


세월호 특별법의 가장 주요한 촛점은 진상규명과 책임에 있다. 우선 진상규명과 이를 위한 책임 소명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을 유가족들은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진상규명과 책임에는 완전히 소극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상에만 관심있다고 줄기차게 공격한다. 이런 줄기찬 선동은 여론을 호도하여 성공한듯 보인다.


이런 선동의 메카니즘은 "당신들도 보상에만 관심있잖아. 그렇기에 돈과 이권만 밝힌 유병언이나 해피아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지. 다들 거기서 거기야" 이렇게 연관 관계를 만들어 유가족들과 진실을 규명하려는 이들의 윤리적 행위를 타락한 속물로 타락시킨다. 


아도르노의 보편적 현혹의 연관관계 

"보편적 현혹의 연관관계는 인식 주체가 대상을 인식할 때 대상을 인식 주체의 목적에 동일화 시켜 인식 주체의 도구로 삼는 행위가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상태이다. 또한 눈먼 상태가 보편적으로 됨으로써 대상의 구조나 본질에 대한 인식이나 통찰을 시도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차단된 상태를 말한다." 





Facebook 2014.7.16

의사소통에서 적극적 행위가 가로 막히는 이유는 기존의 관념에 얽매임 때문이다. 작은 단위에서 큰 단계인 가족, 연인, 직장, 지역, 국가에서 선이해의 관념(선입견, 질서, 전통적 도덕 등)이 클 수록 의사소통을 위한 말은 입 안에서 웅얼거리며 머무른다. 입밖으로 내는 행위의 순간 배신자, 찌질이, 부적응자, 빨갱이가 되어버린다. 이 것은 나도 무섭고, 너도 무섭고 모두가 무서워한다. 공포를 느끼고 이러한 공포를 주입하는 것은 바로 개별적으로 구성된 전체이다. 


"개별적인 것들로 구성된 전체가 개별적인 것들을 총체적이고 빈틈없이 규정하고 관리하는 세계"





Facebook 2014.8.7

어떤 사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된 절차로 처리한다면, 사회적 사건들에 분노할 수 있을까?


사건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유형으로 무한반복되어 재생한다. 각각을 별개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일상화 됐다만, 그 공통점을 찾는다면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쉽게 드러남에도 사건의 연속성은 간과된다.


국가와 사회, 폭력과 폐쇄성, 법과 제도, 분노와 증오,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든 중첩들. 가장 최악은 원인과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과 예방의 부재.


국가와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특정 이익의 도구가 되는 처참한 지점의 낭떠러지에 서있다. 밀려서 죽거나, 썩은 동아줄을 목에 걸고 살아남거나.





Facebook 2014.7.6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 내무반에서 동료 병사들에게 총기난사를 하고 탈영한 임병장. 그를 괴롭힌 것은 시선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견디다 못해 선택한 것은 가장 가깝게 두고 있었던 총이었다. 애석하게도 그에게는 총 밖에 없었다. 총은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상이자 동질물이었으리라.


삶에서 살다보면 나와 함께하는 손에 잡히는 대상들이 있다. 취미라든지, 예술이라든지, 어떤 도구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그래서 시선에 노출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최후에 가까운 대상에 의지한다. 이 대상이 도구 보다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다들 스스로를 추스르지 못하는 각박한 현실로 타인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그래서 더욱 스마트폰이나 소비물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가속됨은 그나마 남아있던 공동체 기억의 유산들을 파괴시킨다. 테러같은 근본주의 종교가 손을 뻗치고, 일베같은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이유도 시선을 조장한 파괴 때문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사랑이나 책, 음악, 예술이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승화되어 이어온 이것들에 나약하나마 부여잡고 기여하면서 의지하고 싶다.





Facebook 2014.8.12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일정에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만남이 예정돼 있단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국가와 자본은 뻔뻔하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렇기에 항상 낮은 곳에 임하기는 교황이기에 그의 행차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는 한줄기 빛이자 고통의 치유가 될 것 같다. 


무리하게 서두르며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한 여야 박영선 원내대표는 오히려 순진할지도 모른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을 만나면 정치의 부재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므로, 모든 시선이 교황의 행동에 쏠리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정치권 입장에서는 커다란 부담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교황의 방문에도 꿈쩍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약자편에서 정의를 실천하려는 교황의 자애로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교황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가 갖고 있는 권능의 '신성'함만 탈취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탈취된 신성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자신의 권위로 탈색시키려 할 것이다. 


교황의 방한을 보니 2010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생각난다. 당시의 정의론 열풍은 뜨거웠다. 그러나 말그대로 책 제목처럼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만 있었지, 왜 한국사회에 정의가 요구되는가,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한 확장은 부재했었다. 이 후에 정의를 위한 정치적 구호와 공약만 요란했지 실제로 구현된 것은 없었다. 만약 마이클 센델이 현재 지금 방한을 해도 4년 전 만큼 그의 강의에 열광을 할까? 이제 교황이 방한을 한다.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 부르며 불평등과 억압을 타파하려는 교황의 가르침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그를 맞이한다. 교황은 환영 받겠지만, 그의 가르침은 환대받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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